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미대를 다니면서 미술의 실용성을 고민하면서 대학원도 가고, 직장 생활도 해봤던 최애가 결국 돌아온 곳이 미술이라는 것이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나눌 수록 서최애가 세상에 존재하면서 표현하려고 하는 그 무언가가 그림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결국 최애가 세상에 내놓는 그림들은 '나'라는 사람의 색과 질감이 빚어내는 조형적인 그 무언가여야 하는거지.


덕터뷰 서선경 마지막 편 시작할게!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서선경 마지막 편

분리된 의식과 감각이 만드는

감응의 결

나의 관심사는 나의 내부에 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과적으로 서최애의 관심사는 최애의 내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경계를, 어떤 사람은 사회라는 경계를, 어떤 사람은 우주라는 경계를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면 최애의 작업은 외부에서 들어온 자극이 최애만의 감각으로 재구성 된 시각 기억이 되고, 외부에 표현하고 싶은 감성을 시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지.


🔴 서최애: 우리는 세상을 대할 때 나를 기준으로 대하잖아요. 부모든 가족이든, 음악이든, 하늘과 땅이든 경계로 따지고 보면 내 외부에 있는 것들인데, 그 외부와 내가 어떻게 관계를 하고 어떤 감성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실질적인 물질인 물감으로 어떻게 다시 외부에 내어 놓느냐를 고민하다보니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더라구요. 결국 내 안에 무언가가 들어와 나만의 감각으로 기억되고, 그 기억을 나만의 결대로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이 제 작업이 아닌가 싶어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포인트가 다르듯이, 최애도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 안에 들어온 것들을 최애만의 감성을 담는 거지. 나만의 조형성을 찾아 내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때, 확실한 경계보다는 모호하지만 존재감 있는 형체가 그려질 때, 그림으로 나라는 사람의 모든 것이 우러나온다는 느낌이 든다는 최애. 그러면서 이런 멋진 말을 했어.


🔴 서최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노래 그 자체일 때가 있고, 춤을 추는 사람도 춤 그 자체일 때가 있잖아요.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과 그림 그 자체가 하나일 때를 찾아 그림을 그리는 거에요. 그래서 제 그림은 '우리 이렇게 합시다'라는 메세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가진 감각의 '상태'를 공유하는 것에 가까워요. 그림 그리는 순간에 떠올리는 제 안의 감각의 상태를 꺼내어 내보이면 그걸 보는 사람에게 닿아서 반응하는 것은 관람자의 것이 되는 거죠. 그래서 비슷한 그림을 그릴 수 없기도 해요. 그 상태는 존재하고서 사라지니까요.


언어로 규정할 수 있을 듯도 하지만 실제로 그게 맞는지 의심이 가는 우리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모호한 그 무언가가 있는 '상태'를 담은 그림.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그 '상태'가 최애의 작품의 주제야!

재구성 된 감각을 표현한 '감응의 결'

최애가 경계감이 적은 그림을 지향하는 것, 너무 강렬한 색감을 지양하는 것들을 나누다보니 최애의 그림이 우리 인간이라는 자체가 존재적으로 스펙트럼임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어. 나와 너의 경계가 분명히 있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 아니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고, 나 역시 외부에 자극을 주어 외부를 변화시키니까. 최애의 그림은 사람이 외부를 소화하고, 다시 외부와 소통하는 감응의 과정을 표현하는 느낌이랄까.


🔴 서최애: 안 그래도 제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로 '감응의 결'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외부와 나로서 내가 우주 안에 존재하지만 사람 안에도 개인의 우주가 있잖아요. 내 우주와 세상의 우주가 어떻게 반응하고 관계되는가를 '감응'이라는 단어로 담아보는 거죠. 또 제가 저만의 조형성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을 '결'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펙트럼 속에서 발견하는 개인의 고유성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나의 특별함을 부각시켜야하는 자기PR의 시대가 시작한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최애의 추상화는 사실상 우리는 그런 남들과는 완벽하게 구별되는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며, 애초에 존재론적으로도 모호한 경계를 가진 스펙트럼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 그래서 최애도 계속 색을 누르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고 해. 하지만!


🔴 서최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고유함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것도 포함해서 이야기하고 싶은어요. 저는 튀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제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는 거니까요.


설득하려 하지 않고, 전달하려 하지도 않는 그림. 그럼에도 내 안의 감각을 그려내며 세상에 있는 '나'를 표현하는 그림. 그렇게 최애가 감각한 것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하여 표현한 그림이 전시되어 다른 의식을 만나 비언어적으로 감응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작품이 되는 서최애의 추상화 (혹은 초상화)를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길 바라 ^ㅡ^

'나'라는 고유성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좀 쌩뚱맞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AI 기술이 발달하고 양자역학이 연구될 수록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의 심도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의 현실이 이 그림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덕터뷰였어.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술, 창작, 창의성이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것만 같은 공포감을 안고 살게 된 2020년대의 중간에 서있는 나에게, 서최애와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처럼 복잡다단하면서 명확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생성해내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달까? 외부의 것을 감각하고, 시각 기억으로 재구성하고, 다시 세상에 나만의 표현으로 내어 놓는 그 과정이야말로 인간의 고유성으로 인정받게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어.


동시에, 철학 위에 그림을 얹는 것이 어려웠던 학부생 서선경이 많은 고뇌와 시행 끝에 이제는 '나의 개성은 이런 것이다'를 세상에 드러내는 창작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 결국 인간에 대한 철학을 쌓는 과정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동시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서선경이 말하는 '감응의 결'을 만든 것이 아닐까 어렴풋하게 짐작해본다. 나라는 것이 존재론적으로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개인마다 분명한 개성이 있다는 최애의 인터뷰 내용을 상기하며, 내가 애써 만들려고 하는 그 무언가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만의 '감응의 결'을 찾게 될 그 날이 올 것임을 믿어봐야겠어.

서선경의 작업 구조

모든 그림은 작가의 감각을 통과한 결과로서,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구조를 지닌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결과를 드러내는 데 머물지 않고,

분리된 의식이라는 구조 자체를 자각하며

그로부터 발생하는 인식의 흐름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전체 의식 (경계 없음 / 하나의 상태)

 ↓ 

분리된 의식 (나 / 자아)

 ↓ 

감각의 발생 

 ↓ 

재구성 (구조의 변화)

 ↓ 

조형적 구조 (색, 형태, 리듬)

 ↓ 

작업 (감응의 결)

 ↓ 

다시 전체를 환기 (보는 이의 인식)

More Interviews.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블로그
밴드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