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삶의 주도권’을 뺏길까 봐 끊임없이 불안해하곤 해. 특히 일과 창작, 내 커리어가 내 존재 자체라고 믿으며 치열하게 달려온 사람들에게 ‘부모가 된다는 것’은 때로 거대한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송두리째 빼앗겨 결국 ‘나라는 고유한 색’이 영영 옅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말이야.
하지만 삶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확장시키곤 해. 내 삶의 중심을 양보하는 희생처럼 보였던 시간이, 실은 나라는 세계를 더 단단하고 깊게 완성하는 가장 놀라운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어.
바로 임솔지 작가야.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임솔지 1편
출산 후 내 색깔이
옅어질 줄 알았습니다.
💬 엘덕후: 작가님, 최근 작가노트를 읽고 마음이 참 뭉클했어요. 예전에는 아기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으셨다고 솔직하게 고백해 주셨잖아요.
🔴 임솔지: 맞아요. 솔직히 예전의 저는 아기를 키우는 삶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컸어요. 내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아기를 키우는 시간 자체가 나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의 색깔이 영영 옅어질 것만 같았지요.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제게는 아주 멀고 낯선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임솔지 작가의 어머님께서는 솔지 작가님을 엄청나게 알뜰살뜰 키우셨다고 해. 아마 그런 엄마의 정성을 알고 있던 작가님이기에, 엄마가 되는 일은 조금 더 숭고한 일처럼 느껴졌을 수 있을거야. 그런 솔지 작가님의 마음을 바뀌게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 임솔지: 그런 저에게 어느 날 엄마가 툭 던지듯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다른 건 몰라도 아기를 키운다는 건, 어른이 된 시점에서 아기와 함께 다시 그 눈높이로 살아가게 되는 거야. 멈춘 레벨에서 새로운 레벨을 시작하는 거고, 그건 아주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 될 거야.”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서서히 다잡게 되었어요. 나의 시간 일부를 ‘누군가를 위한 시간’으로 내어주는 것이 단순한 희생이나 소모가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내가 겪게 될 변화와 성장도 분명 내 삶에 큰 의미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아기를 키우면 화가로서의 내 삶과 색깔이 지워질 거라 두려워했던 우리 최애.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엄마’라는 여정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소멸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배우는 ‘레벨 업’이었다고 해. 낮잠 한 번 푹 자고 일어나 어느새 훌쩍 앉아있는 아기를 보며, ‘나도 저렇게 하루하루 자라기 위해 애썼겠구나’ 하는 뭉클한 위로와 경이를 느낀다는 작가님. 이 신비롭고 벅찬 감정들이 캔버스를 넘어 작은 코튼 페이퍼 위로 다정하게 스며들기 시작한 거지.
출산 후 바뀐 작업 스타일: 캔버스에서 작은 종이 위로
💬 엘덕후: 아이가 태어난 이후, 실제로 작업 방식이나 화구, 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셨잖아요. 사이즈가 있는 유화 캔버스 작업에서 작고 따뜻한 코튼 페이퍼(종이) 아크릴 연작으로 이어지게 된 스토리가 궁금해요.
🔴 임솔지: 아기를 낳기 전에는 일어나서 밥 먹고 작업실 갔다가 밤에 집에 오는 단순한 루틴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서는 아기를 낳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출산을 했지요. 제 상황상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오로지 저 혼자 아기를 키워야 됐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일찌감치 받아들였어요.
신생아때는 누워만 있으니 조금이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데 아이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는 거실에 있던 그림 도구들을 모두 치워야 했습니다. 도구를 치우는 상황이 슬프거나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빠르게 어린이집에 보내며 작업을 진행하느냐, 아기에게 전적으로 집중하느냐.
이에 대한 고민은 사실 아기를 낳고 나서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요. 저는 작업을 놓고 아기에게 집중하기를 선택했습니다. 성장하는 것 하나 하나 놓치는게 너무 아쉬웠구요. 제 인생에서 아기와 함께할 시간은 한정적이고 짧더라구요. 나약한 체력과 성격상 여러가지에 집중하기 힘들고, 제가 아기에게 최선을 다 해도 저희 엄마가 저에게 쏟은 정성의 반만큼이 될까 말까 하거든요.
작업은 열정과 끈기와 노력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동안 작업해 왔던 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사실 그림을 놓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가 저에게는 작업과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과거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작업을 해왔다면, 지금의 작업들은 부모의 시점이 되어 현재진행형이 되었거든요. 앞으로의 작업에서 이 경험들이 어떻게 녹여질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환경에 굴복해 붓을 놓는 대신, 아기와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며 아기 곁에서 한 뼘 종이 위에 다정함을 촘촘히 채워 넣은 임솔지 작가. 작품의 크기가 작아졌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우주의 크기까지 작아진 것은 아니라는 걸, 작가님의 따뜻한 종이 원화들이 증명해 주고 있어. 엘덕들도 오늘 밤, 삶의 제약 때문에 내가 멈춰 선 것 같아 불안하다면 기억해 줘. 한계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방식이 결국 나를 더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임솔지의 작가노트
예전의 나는 아기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내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기를 키우는 시간이 나를 소비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의 색이 옅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기를 갖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이 막연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가끔 하는 얘기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기를 키운다는건 어른이 된 시점에서 아기와 함께 다시 그 눈높이로 살아가게 되는 거야. 멈춘 레벨에서 새로운 레벨을 시작하는거고 그건 아주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 될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서서히 마음을 잡았다. 나의 시간 일부를 ‘누군가를 위한 시간’으로 내어주는 것이 단순히 희생만은 아니고 그 시간 안에서 내가 경험하게 될 어떤 변화와 성장도 분명 의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년 나는 임신을 했고 마침내 아기를 품에 안게 되었다. 지금 나는 하루하루 아기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 여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낯설고 힘들지만 동시에 익숙하며 놀라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낮잠 한번 자고 갑자기 앉는 모습를 보며 ‘나도 그랬겠지. 너도 나도 하루 하루 자라기 위해 힘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인데도 마음 한켠엔 왠지 모를 편안함이 함께한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나를 잃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인생의 다음 단계를 살아가는 특별한 방식이다. 지금 나는 아기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어느새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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