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이희정 작가님의 제주에서의 삶은 일견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지만 한 편으로는 생각하고 느낄 시간이 많은 것 같아서 부러운 마음도 생겨. 우리 작가님의 이 절제되면서도 조용한 모습은 '유학 생활'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더라구. 이희정 작가님, 어디 유학 다녀온 것 같아?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이희정 3편
그림이 아니라
인생을 배웠다.
일본 동양 미술학교에서 수학하다.
💬 엘덕후: 어떻게 일본 유학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 이희정: 친척분께서 그곳에 거주하고 계셔서 초청해 주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 엘덕후: 일본 미술학교에서 배우신 부분 중 지금 그림에 가장 많이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이희정: 저는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을 깊이 마주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조용하고 절제된 모습,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 안에 단단한 내면의 힘을 지닌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지요. 또한 그 시기에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20대의 나이에 혼자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집세를 조정해 달라고 이야기하며, 스스로 일어나 학교에 가고, 밥을 해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누군가에 의지하기보다 혼자 삶을 책임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일본 유학은 그림의 기술을 익힌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으로서 홀로 서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요. 그림은 어디에서든 그릴 수 있지만, 그림을 계속 그려나갈 수 있는 내면의 힘과 토대를 만드는 일은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지금 제가 화가로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기반은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홀로 길을 내며 앞장서는 사슴, 그 길을 따라가는 작은 사람. 일본의 영화에서 볼 법한, 눈 밟는 소리가 뽀득뽀득 들릴 것 같은 그 감성. 작품과 함께 작가님의 작업노트를 돌아보면 그 시절은 그림의 기술을 다듬은 시간이기보다, 그보다 한 사람으로서 홀로 서는 법을 가만히 터득해 간 날들이었나봐. 그림은 어디에서든 그릴 수 있지만, 그림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는 내면의 토대를 다지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잖아. 지금 화가로서 삶의 중심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어둡고 정적이었던 시절에 가만히 굳어진 내면의 기반 덕분일 거야.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그림
💬 엘덕후: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하는 것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어떤 큰 차이가 있었을까요?
🔴 이희정: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인상 깊었던 것은 제 작업에 대해 설명 할 때 진지하게 들어주신 부분이 아직 기억이 나요.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일본의 언어는 확실하게 '이렇다'라고 하는 언어를 구사하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잖아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미묘한 화법을 사용해요. 문화적 차이도 있겠지요. 처음에는 그런 방식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의 기술을 배운 시간인 동시에, 예술가로서 생각하는 방법과 내면을 성장시킨 시간이었어요.
스승이 작가의 작업에 대해 함부로 방향을 지정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던 그 태도는, 예술을 대하는 신중하고 부드러운 방식인 것 같아. 정답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지. 결국 그 시절의 미묘하고 절제된 언어적 경험은 그림의 기법을 넘어, '생각하는 예술'로서 작품 깊숙이 자리 잡은 것 같아. 또한 그림 자체가 '당신은 이래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고요하게 하나의 장면만을 보여주고 있잖아. 즉, 대상을 일차원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에 머물지 않고, 다의적이고 깊이 있는 사유의 결을 화면 아래 깔아둠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조용한 힘을, 그림도 발휘하고 있는거야.
이희정의 작가노트 - 건너가는 사람
나는 항상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고 싶었다.
모르는 곳,
해석되지 않는 곳,
설명되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알고 싶어서 건너가고 싶었다.
멈춰 서서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건너가고 나면 자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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