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오랜만에 돌아온 덕터뷰야. 그동안 잘 지냈니? 나는 2026년을 내려놓음의 해로 정했고 이번 여름은 아주 간단한 삶을 살고 있어. 그러면서 느껴지는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나 하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야. (물론 그 마저도 내 맘대로 되진 않지)
우리는 자꾸 삶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삶은 내 손 밖에 있다는 걸 깨닫기만 하며 사는 것 같아. 그래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나아가는 사람을 보면 존경을 넘어서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하지. 삶의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 덕터뷰가 소개할 작가는 거대한 인도자에게 자신의 갈 길을 의탁하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있어.
바로 이희정 작가야.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이희정 1편
삶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한 삶을 이끄는 거룩한 인도자
💬 엘덕후: 작가님 그림 속에서 노루가 늘 나오잖아요. 그 노루(혹은 사슴)은 종교적인 신인지 아니면 대자연과 같은 의미인지 궁금해요.
🔴 이희정: 그림 속 숲에 사슴과 한 사람이 함께 걷고 있고, 사람은 사슴의 뒤를 따라가고 있지요. 내 생애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미리 완성된 지도가 없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찾아와도 괜찮아요.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자신의 앞에 놓인 그 길이 거룩한 땅임을 믿으며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맡긴 채 걸어가는 모습이에요. 신을 그릴 수 없기에 사슴이라는 존재를 통해 표현했지요. 신이 내 앞에서 나의 삶을 인도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인간의 내면은 늘 불안하고 불완전하기에, 나 보다 큰 어떤 존재가 나를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 그림에는 믿음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인도하는 존재가 있음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두려움 너머에 있는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라는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었지요.
크게 아파서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있거나, 바다에서 표류하다 구조되는 등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극적인 사건들을 겪었다는 우리 최애. 이 과정에서 "삶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기본값을 얻었다고 해.
이러한 태도가 고스란히 작품 속 '사슴(노루)'과 '안개'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일지라도, 나보다 큰 존재가 나를 인도하고 있음을 믿고 담대하게 걷겠다는 신념을 담는거지. 작가님께서 타인의 상황을 깊이 공감하는 긍휼한 마음을 가진 만큼, '두려움 너머의 평안함'을 우리에게도 전하는 거야.
이상과 꿈을 향해 걸어가는 사슴, 그리고 나
💬 엘덕후: 호랑이, 새,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이 있는데 왜 사슴을 택하셨나요?
🔴 이희정: 제주도는 노루가 많아요. 천적이 없어서 인적 없는 오름 숲에 가면 노루와 쉽게 마주치기도 하는데요. 어느 날, 노루와 눈이 마주쳤어요. 보통 노루는 인기척이 나면 빠르게 도망을 가는데 노루가 나를 가만히 쳐다 보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눈을 보고 노루에게 눈을 깜빡이며 눈인사를 했는데 노루도 저를 가만히 보는 거예요. 저는 교감했다고 생각했어요. 노루한테 묻지를 않았으니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노루와의 눈 인사를 잊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 뒤로 사슴을(노루가 아닌) 그리게 되었고 그 뒤에 사람이 따라 걷는 모습을 정하게 되었지요. 사슴은 실제로 보면 아름답고 신비로워요. 사슴의 뿔을 보세요. 노천명의 사슴이라는 시에서 시인이 말하잖아요.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시인은 사슴을 바라보며 고독하고 고결한 존재를 그려냈습니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잃어버린 전설과 향수를 떠올리는 사슴의 모습은, 어쩌면 이상과 꿈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저는 이 시 속 사슴에 게서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에 대한 마음이 제 그림 속 사슴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 시를 오래도록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희정의 작가노트 - 흐름
나의 그림 속,
숲 앞에 사슴과 한 사람이 걷고 있다.
사람은 사슴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사람은 앞을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 있지만 괜찮다.
미리 다 그려진 지도가 없어도 뜻밖의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
한 번도 걷지 않았던 자신의 앞에 저 길이 거룩한 땅임을 믿고 가고 있다.
몸을 맡기고 있다.
나는 신을 그릴 수 없어 사슴을 대신해 그렸다.
신이 내 앞에 생을 인도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사슴과 나’또는 ‘신과 나’의 제목으로 정하고 싶었지만 흐름으로 정했다.
당신이 신을 만난다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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