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하이루? (^ㅡ^)/ 엘덕들아, 이희정 작가남의 사슴 이야기 잘 보고 왔니? 작업노트를 보고 사슴은 신이자 인도자라고만 생각해오다가, 노천명 시인의 <사슴>이라는 시에서 본인의 모습을 본다는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을 곱씹다보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나'로서의 사슴도 가능하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어. 내 삶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또 그 삶을 걸어가는 주체는 나라는 점이 말이야.


오늘은 작가님이 그림 속 사슴, 실제로는 '노루'를 만나게 된 제주에서의 삶에 대해 나눠볼게.


<인터뷰를 빙자한 덕질, 덕터뷰> 이희정 2편

제주에서

화가로 산다는 것

자연스럽다는 것은 무엇인가?

💬 엘덕후: 작가님, 제주도에 사시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요. 사람은 자기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당연히 여기곤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여전히 아름다운가요? 그것이 그림에도 반영되는 거겠죠?


🔴 이희정: 제주에서 작업하는 가장 큰 장점은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이겠죠. 제주에는 갈 곳이 결국 자연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며 작업하게 되니까요. 어쩌면 이곳에서 예술가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척박한 환경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스며들고, 매일 바라보는 풍경은 어느 순간 제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배워요. 자연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때로는 눈이 오고 태풍이 지나가는데, 그 속에서 나무는 흔들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돼요.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변화와 흔들림을 모두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벼려진 힘은 캔버스 위로 고스란히 흘러들어 가나봐. 작가님이 겪었던 통제할 수 없는 삶의 불확실성이 캔버스 위에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로, 가득히 쌓인데다 몰아치는 눈보라로, 때로는 청량한 듯 습한 바람부는 숲으로 발현되는 거겠지.


하지만 이희정의 자연은 우리를 공포나 막막함으로 밀어 넣지 않아. 오히려 참 신비롭고 영험한 평안함을 주는 것이 신기해. 작가님이 변화무쌍하고 척박한 제주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삶의 요동침과 흔들림마저 내면의 고요함으로 온전히 품어 안았기 때문일 거야.

불혹의 섬, 제주

💬 엘덕후: 제주도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왜 그런가요?


🔴 이희정: 제주에는 숲과 바다가 대부분이지요. 저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는 유혹이 거의 없는 환경입니다. 제가 말하는 ‘유혹’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서울에 살았다면 비 오는 날 “오늘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읽을까”, “미술관에서 새로운 전시를 한다는데 보러 갈까” 하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저를 밖으로 이끌었겠지요. 하지만 제주에서는 선택지가 단순합니다. 오름을 걷거나, 바다를 바라보거나, 자연 속에 머무는 일이죠. 그렇게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오히려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제주에서 살면서 예술가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지요. 자연스럽게 고독해지고, 자연스럽게 사색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깊이 생각하고, 책을 가까이하고, 글을 쓰고, 결국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제주는 저에게 무언가를 더하게 한 공간이라기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금의 제 작업을 만들어 주었지요.


많은 사람이 화려하고 자극적인 도시의 소음에 마음을 뺏길 때, 작가는 오히려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야 말아. 제주라고 왜 유혹이 없겠냐마는, 작가는 제주의 유혹까지도 기꺼이 덜어내는 것 같아. 갈 곳이라고는 결국 오름과 숲, 거친 비바람과 바다밖에 없다고 하는 단순한 제주로 자신을 던져둔 게 아닐까. 그곳에서 매일 바람에 흔들리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고독해졌고, 자연스럽게 사유하기 시작했을 거야. 제주는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든 기도실이었던 것일지도.

이희정의 작가노트 - 흐름

숲을 그리는 데 있어 

숲의 색만 보는 것이 아닌, 


하늘 아래의 숲, 

빛의 방향에 따른 숲, 

비가 내리는 숲, 

바람이 부는 숲, 


흙과 오래된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발효된 듯한 냄새, 

이슬이 묻은 잎들, 

공허하며 어둡고 흑암이 가득한 먼 곳의 숲속, 


신비, 

고요함, 

신선함, 

신성함, 

나를 압도할 것과도 같은 두려움의 숲,


그리고 숲에 있을 때 느끼는

영적인 부분까지 그림에 담아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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