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오늘도 피부과를 마치고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어. <창업도 벼락치기> 시리즈를 쓴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도 아직 2025년까지 오지도 못했네. 저번 16편에서는 그닥 잘 하는 것이 없는 내가 어떻게 돈을 끌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어. 바로 지원사업이었지. 지원사업 선정 결과 통보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안기면서 엘디프는 꽤 다양한 사업들을 할 수 있었지. 자생적으로 버는 돈으로는 감히 시도하지 못했을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실행하면서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었어. 우상향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그래프에 어느 자리를 가도 늘 자신감이 가득했지. 특히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도움이 컸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엘디프는 예경 키즈다."라고 말하고 다녔어.


그래, 기왕 말 나온 김에 이걸 주제로 잡아보자. 우리 엘디프가 지원사업으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주제별로 겉핥기 해볼게!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17

예술경영지원센터

일을 ㄱ ㅐ 잘하는 예경

나는 엘디프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관에 지원사업을 받아본 경험도 있지만, 엘디프를 창업하기 전에 이곳 저곳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지원사업 운영에 참여해본 적 있는 공공기관-person이야. 창업도 벼락치기 16편에서도 말했지만, 특허청 산하 기관에서 일할 때는 나의 공공기관 관련 업무 능력이 엄청나게 도약했던 시기이기도 하지. 어디 그 뿐인가, 창업 시작부터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만든 '아트코리아랩'이라는 예술기업 육성 기관에 입주해있어. 그 외에도 KOTRA,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크고 작은 기업들의 지원사업의 수혜를 입기도 했네. 공공기관마다 특성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해봤어.


그 많은 기관 중에 내가 예경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어. 우리가 예경의 은혜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술' 기업의 애로사항을 가장 잘 이해해준다는 감성적인 측면도 있어.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거, 예경은 일을 잘 함. 개 잘 함.


물론 담당자의 성향을 타긴 해. 그러나 대체적으로 모두 일잘러들이기 때문에 꼼꼼한 담당자를 만나면 하나의 질문을 던져도 논문급 답장이 오는 경우가 많아.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해.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충 던지지 않고 완전히 이해시켜 주거든. 그리고 기관 자체가 기본적으로 매뉴얼을 다른 기관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내려주고 수정해야 할 부분도 잘 찾아내서 정산과 감사의 완성도를 어마어마하게 높여줘. 액셀러레이터를 끼고 진행하는 사업이 대부분이지만 예경이 액셀러레이터에게 모든 걸 맡기고 손 놓는 게 아니라 액셀러레이터의 철저한 수행을 관리감독 하는 게 느껴져.


근데 꼼꼼함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풀어 줄 건 과감하게 풀어주기도 해. 예술계는 예술가를 직접 고용하기 보다 프리랜서로 계약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대부분 지원사업은 4대보험 가입을 했냐 안 했냐로 회사를 평가하는데 예경은 예술인과 얼마나 협업했냐 대해서도 성과로 쳐주거든. 이거는 내가 한 번 자문회의에 참여해서 의견을 낸 후에 바뀐 거라서 나름 뿌듯한 부분이야.


래서 나는 예경을 상당히 좋아해. 이들과 함께 하면 단순히 지원금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이 있거든!

예경 키즈의 지원금 사용처

시제품 제작 - 엘디판

우리는 무형의 재산권으로 유형의 상품을 만들어서 파는 기업이기 때문에 시제품 제작에 많은 지원금을 활용했어. 그 대표적인 예가 '엘디판'이야.


엘디판은 엘디프와 LP판을 합성해서 만든 단어로, LP판의 형태를 가진 아트포스터 패키지를 말해. 엘디프는 A4, A3, A2, 50*70cm, 30*30cm, 50*50cm 등 정형화된 사이즈의 아트포스터를 제작하는 '오픈에디션'이라는 브랜드가 있어. 대부분 포스터는 지관통에 말아서 보내지만 우리 포스터가 워낙 두께감이 있다보니 지관통에 말아 보내면 종이가 돌돌 말린 후로 잘 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게 영 마음에 걸리더라고. 그래서 아트포스터와 동일한 사이즈의 투명한 포켓을 만들고 아트포스터의 뒷면에 단단한 MDF를 덧대어 포켓에 넣어 보내는 엘디판을 생각했어. 이러면 아트포스터를 액자 없이 감상할 수도 있고, 기존에 가진 액자에 아트포스터를 넣고 나면 기존 아트포스터가 갈 길이 없잖아? 그럴 때 새로 보관할 수 있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어. 얇고 가볍기 때문에 책 보관하듯이 꽂아놓고 필요한 포스터를 그 때 그 때 꺼내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그런데 지원금이 하나도 없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쉬움도 많이 남아. 그렇게 지원금이 풍족할 때 우리 엘디프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개발할걸...하는 후회가 많이 남아. 디자인권이든 특허든 그 때 개발했었어야 했는데.

국내외 박람회/전시회 참가

시제품을 제작했다면 그걸 선보여야겠지? 그리고 우리의 오프라인 매출도 만들면 좋고 말야. 엘디프는 2018년부터 지속적으로 박람회/전시회에 참가해오고 있어. 국내 인테리어 관련 박람회는 한 회에 1~3회는 나가고 그 외의 디자인페어, 일러스트레이션페어 등은 사안에 따라 나가기도 하고 안 나가기도 해.


국내 박람회는 물론이고 해외 박람회도 나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회가 주어졌던 적도 있지. 2019년에 다녀온 London Design Fair, 2022년에 다녀온 Design London 은 예경의 지원금으로 다녀온 거야. 해외 박람회에 참가해서 우리 엘디프라는 플랫폼과 한국의 작가들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늘 수출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에게 정말 큰 지원이었어. 해외 박람회 참가 비용은 물론이고 체제비, 항공비도 지원받을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지.


그 외에도 정말 도움이 됐던 것은 '해외 운송비'였어. 우리가 수출을 하면서 지금도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해외 배송비'거든. 우리 전시를 위해 배송하는 것도 큰 돈이지만, 전시를 마친 후 해외에서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이 가장 주저하게 되는 부분도 '높은 배송비'였기 때문이야.


좀 아쉬움이 있다면 이 두 박람회 이후로 직접적으로 계약이 성사된 적이 없다는 점이야. 우리를 알리고 납품까지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예상했지만, 또 그만큼 해외 박람회는 국내 박람회처럼 즉각적인 성과가 나지 않았던 거지. 해외와 국내가 다르다는 걸 배울 수 있었고 우리 회사에 대해서 조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그런데 내 개인적인 반성을 곁들이자면, 당연한 결과 같아. 박람회를 목숨 걸고 준비하지 않았고 '오예~ 가쟈~'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기 때문이겠지. 어떻게 주어진 기회인데.....

쓰다 보니 또 길어지네. 어휴.. 어쩔 수 없다. 예경 키즈 이야기는 시리즈로 가보자. <창업도 벼락치기>라는 시리즈 속 미니 시리즈. 맨날 이렇게 일만 키우니 ㅉㅉㅉ

최승윤 - 정지의 시작-2022-53

덕업일치 Issue No.17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최승윤 작가의 <정지의 시작-2022-53>이다. 최승윤 작가에게 처음 에디션 제작을 제안했을 때 이메일로 계약의 세부 내용을 아주, 아아아아주 꼼꼼히 보낸 후 작가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실리적이면서도 정중한 질문들에 나도 신이 나서 대답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매월 판매된 작품의 저작권료를 정산해드렸더니 '상품 판매로 저작권료를 이렇게 많이 받아본 건 처음이다'라는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어깨가 으쓱해졌던 순간이었다. 사실 승윤작가의 작품이 일견 보건 이견 보건 멋져서 계약을 제안했던 터였고, 이런 작가가 우리가 함께 하다니 너무 영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일정 시간이 흘러 최승윤 작가의 작품노트를 상세히 읽게 될 기회들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전시를 열면 최대한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작업노트를 읽고나니 이 작품은 겉만 멋진 게 아니고 속도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이번 편을 쓰면서 속에서 쓰린 마음이 올라왔다. 쓰는 지원사업마다 족족 떨어지는 쾌거(?)를 경험하며 꽤나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지금, 지원사업에 의존해서 놓친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노력해서 얻은 것이긴 하지만, 그 노력에 비해 과하게 좋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때는 그게 과한 줄 모르고 마냥 좋기만 했다. 더 면밀히 더 세심하게 사용하지 못한 부분이 지원금이 없는 이제야 뼈저리게 다가온다. 순풍을 달고 항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오만함에 서서히 물들어가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 모순이고 역설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선정했다. 승윤작가의 작업노트가 내 마음을 조금 평안히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이 힘든 시기가 또 역설이 되어 기회를 만들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 오는 크고 작은 모든 기회에 대해 감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더욱 진심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서.


" 내 그림은 이러한 세상의 질서를 담고 있다. 역설의 균열에서 시작된 그림은 균열을 메우기 위해 확장되고 자신이 영원할 것처럼 생명력을 뽐낸다. 하지만 탄생은 시작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림을 나는 정지시키려 한다. 그 정지의 느낌이 완성됐을 때,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정지와 활동의 느낌을 동시에 담은 역설의 존재가 되며 다시 생명의 시작이 된다. " -
최승윤의 '작업노트종합본' 중 2014년 1월의 노트에서


작품 정보 - 정지의 시작-2022-53, Oil on canvas, 130x97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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