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양벼락이야.

3개월 만에 찾아온 덕업일치는 새로운 부제를 가진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어. 이름하야 <직관도 벼락치기>. <창업도 벼락치기>를 2025년 현재 시점까지 다 작성한 후로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엘디프가 가장 많이 하는 덕업일치는 전시 보러다니기 라는 걸 깨닫고 나름의 전시 리뷰를 시작해보려 해.


그러고서 처음 직관한 전시가 뭐냐하면................. 무려 故김창열 화백님.... (감히)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22

잉..? 이게 김창열 그림이라고?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우리가 알고 있는 김창열 화백님의 그림은 '물방울'이지. 화백님의 아드님께서 만드신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라는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창열=물방울 이라는 공식이 있어. 그리고 베이지톤의 캔버스 위에 엄청나게 절제된 화면이 특징을 갖고 있지. 이 작품들처럼 말야.

물방울 그 이전에 직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서 진행되는 <김창열 회고전>의 입구에 딱 들어서면 보이는 그림들은 '뭐지 나 잘못 들어왔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 강렬한 색감, 강한 직선, 그리고 거친 질감이 화백님의 물방울과는 영 동떨어져있기 때문이야.

<김창열 회고전>의 첫 문을 열고 난 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 내가 김창열 화백님 그림을 보고 있는거구나'라고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딱 두 가지야. 물방울 모양 설치작품과, 벽에 붙여진 작품과 화백님에 대한 설명 두 가지 뿐이었어.

살아남은 자의 치유되지 못한 마음

"총알 자국과 탱크의 흔적처럼 전쟁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화면에 담아내고, 죽음을 위로하는 제사와도 같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 직선은 전쟁을 겪어내며 '살아남은 자'가 기억하는 전우들의 상처였다고 해. 김창열 화백님은 죽지 않은 죄책감으로,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지.

나는 미술 문외한에 가깝지만 어쩌다보니 미술 시장에 몸을 담게 되면서 어렴풋한 윤곽 정도만 알고 있는 '준문가'인데, 

물방울 그 이전에 직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서 진행되는 <김창열 회고전>의 입구에 딱 들어서면 보이는 그림들은 '뭐지 나 잘못 들어왔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 강렬한 색감, 강한 직선, 그리고 거친 질감이 화백님의 물방울과는 영 동떨어져있기 때문이야.

<김창열 회고전>의 첫 문을 열고 난 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 내가 김창열 화백님 그림을 보고 있는거구나'라고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딱 두 가지야. 물방울 모양 설치작품과, 벽에 붙여진 작품과 화백님에 대한 설명 두 가지 뿐이었어.

거대한 바다의 작은 새우임을 받아들이다.

파도에 맞서지 않기로 체념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위기가 오면 잘 이겨나갈 수 있겠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난 할 수 있어! 라고 큰 고민 없이 사업을 시작한 것 같아. 그런데 뭘 해도 안되는 때를 겪고 나니, 내가 이길 수 없는 큰 파도라는 게 무엇인지 알겠더라고. 남들이 그 파도를 이기는지 마는지는 나랑 상관이 크게 없더라. 나는 그냥 나의 힘과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 판단에 내가 넘기지 못할 파도라면 과감하게 파도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는 거더라고.


나의 2024년 3분기는 그런 해였어. 부정과 분노의 2024년 상반기를 거친 후로,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체념하듯이 받아들였어. '내가 꿈꾸는 미래는 안 올 수도 있다. 나의 여정은 그냥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미 망쳐버린걸...' 이런 마음이 컸어.


그렇지만 나에게는 작은 희망의 증거가 하나 남아있었어. 그건 2분기 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모집했던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에 냈던 기획안 하나야. 그때는 지원사업을 넣었다 하면 죄다 서류에서 광탈되던 때라 이것도 떨어지겠지 뭐. 하는 마음으로 썼어. 엘지유플러스의 '무너' 캐릭터를 활용해서 어떤 사업을 할지 기획안을 내는 거였어.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안 될 거니까 그냥 나 하고 싶은거 다 적어보쟈! 라는 마음으로 엄청 낄낄낄 키키키키키 거리면서 사업을 구상했어. 초장 무너, 간장 무너 등등 무너들에게 페르소나를 부여하면서 이야~ 이거 이렇게 만들면 너무 재밌겠다!!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기획안이 하나 있거든. 그게 서류는 통과하더라? 대면발표에서 내가 너무 긴장해서 벌벌 떨긴 했지만 그래도 최종 결과를 보니 합격은 아니지만 '후순위'로 합격을 시켜주더라고.


재밌게 했으니 이 정도라도 감사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었지. 심각하게 생각 안하고 재미있게 했더니 좀 좋게 봐주시는구나. 앞으로도 재밌는 거 많이 해야지!

오늘만 사는 새우가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엄청 잘난 건 아니어도, 또 그렇게 못난 존재도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어. 이 정도가 내 역량에 딱 맞는 수준이다. 회사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정도의 작고 하찮지만, 타지 않고 살아남은 심지가 있었지.


비로소 이런 결론에 이르렀어. 나는 오늘의 할 일에만 집중한다. 내일도, 다음주도, 내년도, 10년 뒤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할 일이 있다면, 미루지도 당기지도 말고 그냥 오늘 한다. 그냥 한다. 그러다보면 나에게도 운이라는 게 오겠지? 근데 그 운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그냥 오늘의 나를 살아내겠다. 아프면 아픈 대로, 망하면 망하는 대로, 잘되면 잘 되는 대로.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어. 나중에 정말 잘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절대, 결코, 네버, "내가 잘 해서 잘 된거다."라고 말하지 않겠다. 나는 그냥 작은 새우일 뿐이다. 이 바다가 갑자기 나보고 고래 등을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고래 등을 터뜨려보려고 노력은 하겠지, 소 뒷걸음질 치듯이 어찌저찌 하여 고래 등이 터질 수도 있겠지, 설령 그렇다 해도 "와씨 나 진짜 미친 새우야 난 너무 멋져!!! 이건 다 내가 잘해서 그런거야!!!"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즉시 나락에 떨어져도 아무 변명도 하지 않겠다.


사업을 성공시켜서 으시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 지금도 불쑥불쑥 진짜 성공해서 떵떵거리고 싶다! 라는 마음이 스믈스믈 올라오곤 해. 그렇지만 그 때마다 나를 다스려. 그런 건 올 수도 있지만, 안 올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바늘 구멍을 뚫고 그것이 내게 온다 해도 나 자신이 잘해서라고 생각하지 않겠다.


이렇게 고통을 수용하는 단계까지 오니까 매출이 바닥을 뚫을 기세로 빌빌 기더라고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대출이랑 투자받은 게 없어서 땅까지 파고 들어가진 않았으니 그걸 다행이라고 여겨야할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담 - 개벽

덕업일치 Issue No.21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소담 작가의 <개벽>이다. 소담 작가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서 멋진 작품을 걸고 있는 소담 작가의 부스를 만나, 수줍지만 공손하게 엘디프에 대한 소개를 메일로 보내드려도 괜찮겠냐고 여쭤보았고 그를 계기로 계약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전부이다. 소담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바다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을 품은 무시무시한 푸른색부터 백사장이 깔린 외딴 섬에 드론을 띄워 보는 듯한 청량한 바다도 있다. 작가와 엘디프가 계약한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파도를 담고 있다. 파도는 집어삼킬 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한바탕 휘몰아친 후 소강 상태에 머무른 듯한 모습이기도 하고, 서핑을 할 수 있으려나? 싶은 정도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작품보다 더 거칠고 강한 파도를 표지로 삼을까 싶었지만, 지나보니 그 정도로 무섭고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에메랄드 빛이 섞인 <개벽>이라는 작품을 선정하였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어렵고 뭘 해도 안되던 시기였지만, 내 주변의 그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나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충전해주었기 때문이리라. 2024년의 파도는 쪼렙의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파워를 가졌던 것은 분명하지만(그리고 만약 나 혼자서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야 했다면 나는 진작에 포기했을 것 같지만) 내 가족, 내 동료들, 그리고 나를 만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터질뻔한 내 등을 구원해주었다.


서핑을 할 때 파도가 너무 높으면 오히려 물 속으로 들어가서 파도를 넘긴다고들 한다. 2024년 상반기에는 파도를 타겠다고 난리를 부렸지만, 하반기에는 그냥 물 속에서 숨을 최대한 참고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2025년이 되었다고 그 파도가 다 지나가거나, 내가 파도를 엄청 잘 타는 인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새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고래이길 바랐지만 말이다. 그래도 새우임을 받아들이니 바다에서 살기가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다.


작품 정보 - 개벽, 14.8ⅹ21cm, Oil pastel on pap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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